계약한 것 보다 더 좋은 물건 공급해도 계약위반?

원래 납품하려고 계약한 것보다 더 품질이 좋은 물건을 공급한 것도 계약 위반이 될 수 있을까요?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기 쉽지는 않은데요. 실제 사례로 접근해보겠습니다.

 

정부는 개봉관이 없는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작은 영화관' 건립을 추진하며 관람용 의자 구입을 지원하기로 하고 2014년 A씨와 납품계약을 체결합니다.



당초 A씨와 납품계약을 맺은 의자는 단가 35만원 상당의 고정식 연결의자였는데요. 공간이 넉넉치 않은 영화관에서 자동으로 접히는 특허기술이 적용된 제품이었습니다. 

 

조달청은 심사를 거쳐 해당 제품을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했는데요. 조달청 우수조달물품 자격을 얻으면 경쟁입찰 과정없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공공기관에 납품할 수 있습니다. 이번 A씨와 조달청간의 계약 역시 수의계약으로 진행됐죠.

 

그런데 지자체 논의 결과, 당초 계약한 제품보다 더 좋은 품질의 의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지자체들은 이런 의견을 A씨에게 전달했고 이에 A씨는 품질이 더 우수하고 단가도 더 비싼 의자를 대신 공급합니다. 

 

하지만 조달청은 A씨에게 3개월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내렸습니다. 임의로 납품 물건을 바꾼 A씨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부정당업자'에 해당한다는 이유였습니다. 

 



  

A씨는 억울했습니다. 좋은 뜻에서 본래 계약보다 높은 품질의 물건을 납품했다가 입찰자격 제한이라는 불이익을 받게 된 때문이죠. A씨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더 우수한 품질의 의자를 공급한 건 부실 계약 이행이 될 수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양이 더 높은 의자로 바꿨다고 해도 임의로 납품 제품을 변경했기 때문에 계약을 어긴 것이라고 봤는데요. 계약 당사자는 A씨와 조달청인데 제3자인 지자체의 요구만으로 다른 제품을 공급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공급한 의자가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원 계약한 제품은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돼 수의계약이 가능했지만 실제 공급한 물품은 수의계약 대상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투명하게 국가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국가계약법의 의의를 고려할 때 이는 부당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아울러 A씨가 지자체에 우수조달물품이 아닌 제품도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점도 계약 위반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사정도 충분히 고려했습니다. 계약 위반은 맞지만 그 이유로 입찰참가자격까지 제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판단을 내린 건데요. 조달청의 처분을 취소한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원 계약과 다른 의자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내구성 단축이나 안전도에 위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데요. 

 

대법원은 조달청의 처분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공익과 A씨가 입을 불이익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훨씬 크다고 판단해 처분을 취소한 원심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제27조(부정당업자의 입찰 참가자격 제한 등)

① 각 중앙관서의 장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이하 "부정당업자"라 한다)에게는 2년 이내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여야 하며, 그 제한사실을 즉시 다른 중앙관서의 장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이 경우 통보를 받은 다른 중앙관서의 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부정당업자의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여야 한다.

1.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서 부실ㆍ조잡 또는 부당하게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자 

Designed by Kumsol communication